CGV The 장국영 기획전에서 오랜만에 보는 아비정전
4월1일이 되면 많은 장국영 분들의 팬들이 먼저 떠난 그를 기리곤 하는데요.
얼마 전 3월 말~4월 초 CGV에서 장국영 기획전을 했답니다.
이벤트도 하고 그러던데 저는 시간이 안 맞아서 아비정전하고, 동사서독리덕스만 오랜만에 관람하였죠.
피카디리는 처음 가보았는데 종로3가역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역에서 바로 갈 수가 있더라고요.
입장권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기념 삼아 출력했는데 요즘은 이렇게 그냥 흰 종이에 출력이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길게 칼라로 나왔는데, 불필요해서 인지 심플하게 바뀌었네요. 아무튼 오랜만에 본 아비정전 스토리 리뷰해볼게요.
아비정전 Days of Being Wild 1990
감독 : 왕가위
출연 : 장국영, 장만옥, 유덕화, 유가령, 장학우, 소방방, 양조위
영화의 시작과 끝은 필리핀의 열대 숲을 바라보는 모습이 나오는데, 필리핀은 주인공 아비(장국영)가 태어난 곳이자 낳아준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사생아로 태어난 아비는 홍콩으로 입양 보내어져 현재의 어머니 밑에서 자라가 되었고, 반반한 얼굴의 그는 따로 직업이 없이 플레이보이로 살아가는 청년입니다.
자신이 사생아고, 길러준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니란 걸 알게 된 후 지독한 여성편력이 생겼고, 카사노바가 된 것이죠.
영화의 시작부터 그의 작업은 시작됩니다. 축구 경기장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장만옥)에게 매일 같이 찾아가 멘트를 날리죠. 수리진은 뜬금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그의 멘트에 처음에는 방어적으로 대하지만.
그의 근거 있는 자신감,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1분 씬
같이 시계를 보며 보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찰나 그 1분. 그 시간을 기억하겠다는 멘트에 수리진은 그에게 꽂혀버립니다.
그리고 둘은 급속도로 빠르게 연인이 되었는데... 하지만 그는 결혼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죠. 수리진은 자연스럽게 결혼할 것을 전제로 만나기 시작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둘은 오래가지 못하고 헤어지게 됩니다. 수리진은 방문을 나서며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선언하지만... 그녀는 그를 잊지 못합니다. 찰나의 1분이 그녀를 오랜 시간 아비를 잊지 못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아비는 늘 그랬다는 듯이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새로운 인연을 찾는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밤무대 댄서로 일하는 미미였습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녀의 마음의 문을 여는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비의 절친 장학우 그 또한 미미를 보고 빠져 들게 됩니다. 잠깐 마주친 것뿐인데 무모할 만큼 빠져들게 되죠.
그리고 아비가 읊조리는 시
다리 없는 새가 살았다.
이 새는 나는 것 외에는 알지 못했다.
새난 날다가 지치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었다.
이 새가 땅에 몸이 닿는 날은 생에 단 하루
그 새가 죽는 날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명장면 속옷만 입고, Maria Elena에 맞춰서 유유자적 춤을 추는 아비
그가 읊조린 시와는 참 대조적인 시다. 발 없는 새는 마지막 신에 자기 자신을 뜻함을 알 수 있다.
다시 수리진, 아비를 잊지 못해 두고 온 물건을 핑계로 아비를 찾아온다. 하지만 이미 다른 여자가 생긴 그는 수리진을 매몰차게 대할 뿐이다. 그녀는 아직 그를 잊지 못했고, 방황하는 수리진을 경찰관 유덕화가 잠시 달래준다.
짧은 시간이지만 속 마을 털어내게 되고, 마음이 진정된다.
그런데 그 잠깐의 만남이 경찰관 유덕화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필요할 때 공중전화로 전화하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는 항상 그 공중전화를 지날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혹여나 그녀의 전화가 울리진 않을까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역시나 아비는 미미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필리핀으로 떠날 생각을 한다. 미미는 아비의 어머니를 찾아가 그를 찾아보지만 만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절친으로부터 필리핀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어리석게 아비를 잊지 못하는 그녀를 데려다주던 장학우는... 뜬금없이 급발진하여 그녀를 때려 진정시킨다.
그리고 다시 이성을 차리고 만난 두 사람, 장학우는 아비가 남기고 간 차를 판 돈을 그녀에게 준다. 필리핀으로 갈 여비를 마련해 준 것이다... 이런 게 정말 사랑인 걸까...
아무튼 아비는 필리핀의 대저택에 왔다. 그의 친모가 사는 대저택이다... 어머니를 찾았지만... 어머니는 그를 만나주지 않는다. 집의 규모도 그렇고, 문 앞에 가문의 문장도 있고... 보통 집은 아닌 것 같다.
어머니의 얼굴조차 못 본 그는 주먹을 불 끈지고 돌아선다. 화가 난 걸까 응석인 걸까 그 또한 어머니에게 얼굴을 보여 주지 않기 위해 뒤돌아 보지 않고, 갈길을 재촉한다.
그리고 차이나 타운 숙소 앞에서 우연히 유덕화와 만나고 같이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유덕화는 경찰관이었지만 자신의 꿈인 선원이 되어서 필리핀에 왔다. 원래 선원을 꿈꿨지만 노모를 홀로 모셔야 해서 경찰관을 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선원이 되었다.
유덕화는 수리진과 만난 날 아비와 잠시 마주쳤지만 서로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음날 같이 기차역에 가는데, 각자의 길을 가려고 한 것 같다. 그런데 아비가 잠시 뭔가 협상할 게 있다며 누군가와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가 말한 협상이라는 건 위조 여권이었다. 무슨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위조 여권을 거래하려고 중개인과 접촉한다.
그런데 아비는 뻔뻔하게도 돈도 없이 거래를 시도했고, 당연히 협상이 잘 될 리 없고 그는 순간적으로 그를 칼로 찔러 버린다.
현지인들과 싸움판이 벌어지는데, 유덕화와는 헤어질 잠깐 만날 사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공범이 되어버리고, 유덕화도 그들에게 총을 겨눠버린다.
순식간에 도망자가 되어버린 두 사람
일단 어디를 향하는 기차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올라타서 둘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다 유덕화가 잠시 뭐 좀 물어보기 위해 자리를 비운 순간
아비는 누군가에게 총을 맞는다.
그리고 다시 독백처럼 읊조려지는 발 없는 새 이야기
그리고 미미는 뒤늦게 필리핀에 도착하고, 그들이 묶었던 차이나타운의 숙소로 향한다. 이제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리고 이제는 잊었다고 자위하는 수리진은 일상으로 돌아가 매표소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런데 마치 쿠키 영상처럼, 영화 전반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양조위가 한 씬 등장한다.
이게 이 영화의 마지막 씬인데, 당시는 이 씬에 대해서 많은 추측이 있었다 처음 개봉 당시에는 양조위가 아비의 형이라는 자막이 달려 있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 영화의 제작자는 등광영이라는 원로 배우다. 근데 당시 중견배우들의 상당수는 삼합회와 연결돼 있었고, 등광영도 그런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 왕가위의 첫 데뷔작인 열혈남아 때부터 같이 했는데, 열혈남아는 유덕화의 다른 영화와는 사뭇 다르긴 했지만, 그래도 액션 영화의 플롯을 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어찌어찌 두 번째 작품 제작까지 이어졌는데... 나는 아비정전부터를 진정한 왕가위의 작품으로 본다. 그 얘기는 상업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전형적인 작가주의적인 영화인데... 당대 최고 배우들을 모아 놓고 이런 실험적인 영화를 찍는다? 그것은 사실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실제로 등광영이 왕가위를 죽이려 킬러를 보냈다는 설이 나올 정도로 두 사람은 사이가 급격히 나빠졌다. 그 이유는 당연히 영화가 쫄딱 망했기 때문이다.
아비정전은 마치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처럼 엮인 영화 한 편을 더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는 애초에 한 영화였지만 편집 과정에서 분리되기도 했다.
암튼 다음 에피소드의 주인공이었던 양조위가 아비정전의 마지막 씬에 등장했지만 제작자와의 불화로 인해 관계는 산산조각되었고, 후속작은 제작되지 못했다.
몇 년간 영화를 못 찍다가 새로운 제작자를 만나 동사서독을 제작하게 되었는데, 아비정전 때보다 훨씬 많은 탑스타를 캐스팅하고 중국 사막에서 올로케이션에 들어갔다. 홍콩이나 중국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지금이야 뭐 그렇게 말해도 할말 없지만 아무튼 그냥 올로케이션이 아니고, 해외 올로케이션이었다. 그것도 모래밖에 없는 황무지에서... 촬영기간이 길어지면서 제작비에 문제가 생겼고, 급기야 촬영은 중단되었다. 그 상황을 어떻게 던 마무리 했어야 됐기에 왕가위의 절친 유진위가 도와주었고, 동사서독의 출연진을 가지고 코믹 무협영화 동성서취를 제작한다. 동사서독과 동성서취는 둘 다 김용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만든 영화고, 출연진도 거의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영화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동성서취는 그 해 상반기 박스오피스 1위를 하게 되었고, 동사서독 촬영이 재개되었다. 근데 그 와중에 동사서독이 중단된 사이 왕가위는 잠깐 짬을 내서 영화를 찍었는데 그게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였다.
동사서독은 장국영, 양조위, 양가휘뿐만 아니라 임청하 등 당대 최고 스타를 다 기용해놓았지만, 무협영화라는 홍보 타이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철학적인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전형적인 왕가위스러운 영화인데 그렇다 보니 이 영화도 흥행적으로는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그냥 끄적이듯이 짬으로 만들었던 중경삼림과 타락천사가 빵 터지고 많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홍콩 영화의 주류였던 액션도, 코미디도, 귀신영화도 아닌 새로운 감각의 멜로 영화? 같았던 두 작품이 단순히 홍콩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면서 왕가위식 촬영 방법이 유행이 되었고, 많은 영화와 CF에서 오마쥬, 패러디되었다.
이로서 왕가위가 홍콩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부상하게 되고,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호평받게 되고 그의 전작도 다시금 주목받게 된다.
아무튼... 아비정전뿐 아니라 그의 영화에서는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엇갈리는 감정을 표현하고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97년 홍콩 반환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홍콩 사람들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90년대 전후로 해서 왕가위뿐 아니라 많은 홍콩의 감독들이 이러한 점들을 영화로 표현하곤 했고, 영화 속에서는 계속해서 영웅을 만들어 냄으로서 불안감을 떨쳐내려 했다.
그러다 97년이 다가 오자 많은 스타들이 홍콩을 떠났고, 후에 복귀한 스타들도 있지만 홍콩으로 쏠려 있던 일본 등 외부 자본들도 홍콩 반환과 함께 빠져나가게 되면서, 홍콩은 점차적으로 이렇다 할 좋은 작품을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주성치, 견자단, 고천락 등등 몇몇 배우들은 꾸준히 활동을 하지만 대중의 관심은 현재의 홍콩보다는 오히려 90년대와 그 이전의 홍콩을 그리워할 뿐이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암튼 아비정전의 후속작은 당시에 제작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홍콩 반환 이후 2000년도 화양연화를 통해 다시 아비정전의 스토리를 접붙여 놓았다. 당시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화양연화로 그리고 2046으로 그대로 담겼을지는 왕가위 자신만이 알겠지만, 팬들은 미완성된 아비정전의 아련한 마음을 화양연화와 2046으로 달래 본다.
아비정전의 아련함은... 장국영의 부재가 더욱더 우리를 쓸쓸하게 만들고 있다...
2022년 4월 7일...